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4.19 혁명/진행 (문단 편집) ===== 중앙대학교 ===== [[http://news.cauon.net/news/articleView.html?idxno=19930|중대신문 4.19 특집기사 - 의에 죽고 참에 살았다.]] 4.19 혁명에 참여한 당시 재학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하여 기사를 작성한 것이다. 4.19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것. ||[[파일:attachment/419-3.jpg]]|| [[중앙대학교]] 학생들은 시위 참가자 중 하루 만에 6명이 사망했다. 7명이 사망한 서울대학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셈. 이런 연유로 [[중앙대]]의 별명이 ''''의혈'''' 이다. 다음은 중앙대에서 발표한 선언문. >우리 중대생이 자유당 정권의 폭정을 규탄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파렴치한 유산을 물려받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의 정당한 저항이다. 총칼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감행되어야 할 이 항쟁은 우리 후손에게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광적인 장기집권이 가져다 준 부정과 부패의 무서운 해독을 오염시키지 않으려함에 있다." >사망자 명단 - 고병래(상학과3), 김태연(약학과3), 서현무(법학과3), 송규석(정외과3), 지영헌(신문학과3), 전무영(신문학과1). ||[[파일:attachment/419-4.jpg]]|| 6인의 열사들의 영정과 이름은 중앙도서관 앞의 탑에 새겨져 있다. 다음은 탑의 비문의 내용. >우리들은 남으로부터 싸워 올라가 >마침내 사월학생혁명 그 대열에 >기를 높이 올렸다 >그러함에 있어 우리들은 >우리들의 영원한 사랑 >조국의 자유와 독립 >민주와 번영 >생존의 평등 평화를 위하여 >모든 지성 모든 생면 모든 사랑을 >다하여 아낌이 없었다 >그리하여 여섯 명의 벗을 잃었으니 >아! 슬프도다 4월이여! 광영이여! >벗의 이름으로 끝이 없어라 > >4293년[* [[단군기원|단기]]로, [[서력기원|서기]] 1960년이다. 1948년 정부수립 이후 1961년까지 단기가 국가 공식 [[연호]]였다.] 9월 중앙대학교 학생일동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